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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의 수록작 "601, 602" 서평

creative-talent 2021. 8. 1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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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수록작 '601, 602'에 대한 서평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수록된 단편 소설인 〈601, 602〉는 제목으로 하여금 저 두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대개 두 개의 무엇을 나열한다는 것은 비교일 가능성이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두 개의 나열이 ‘다른 줄 알았지만, 결국 같다’는 걸 알았다.

 

  소설의 제목인 ‘601, 602’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아파트의 호수를 의미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복도식 아파트 6층, 그리고 ‘나’의 옆집에 동갑내기 효진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을 언급한다. 즉 누가 601호고 602호에 사느냐의 문제는 결코 중요치 않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와 ‘효진’이 속한 세계가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나’와 ‘효진’을 묘사할 때 두 대상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둘 다 다른 지역에서 이 지역의 아파트에 오게 된 점이나, “우린 같은 나이에 생일도 이틀 차이였고 키도 몸무게도 비슷했다.”등의 서술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이는 어떤 결론을 거두기 위한 심어두기의 장치일 수도 있다.

 

 

 

 

 

  효진의 집을 서술하는 부분을 보면, 효진의 집은 가부장적이며,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으로 비춰진다. 제사를 한 달의 한 번 이상 지내며, 제사일이 다가오면 효진은 서둘러 집으로 가 심부름을 했다는 서술, ‘나’가 엄마의 심부름으료 효진의 집으로 갔을 때 효진의 오빠인 ‘기준’을 기억하며 아직도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지난 날의 효진과 기준을 회상한다.

 

  어느 날 '나'는 효진의 집에 놀러가게 되는데 효진이 오빠인 기준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을 보고, 놀라 막아선다. 하지만 효진의 부모조차 그 폭력을 방관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나’의 눈에는 효진의 부모가 마치 기준을 자신보다 높은 사람 모시듯 하며 효진을 아랫사람 보듯 차별을 두는 모습이 외동딸인 ‘나’에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모습 죄다 봐버린 ‘나’에게 효진은 제발 다른 애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며, 부탁한다. 집에서의 효진은 무시를 받으며 폭력의 피해자지만, 밖에서는 전혀 달랐다. 명랑하고 쾌활하며,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아이였다. 또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똑똑한 아이로 통했다. 그랬기에 그 누구도 효진이 그런 가정의 아이라는 것을 직접 본 ‘나’ 말고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효진의 엄마와 ‘나’의 엄마가 마주쳤을 때 ‘나’의 엄마는 효진이를 부러워하며 칭찬했다. 하지만 효진의 엄마는 여자애가 공부를 잘하면 무엇 하냐며, 살림 밑천이라는 둥, 돈이나 벌고 시집이나 잘 가면 다행이라는 이야기만 했다. ‘나’의 엄마는 그날의 일을 두고 저런 엄마 밑에서 자라는 효진이가 불쌍하다고, 요즘 저런 집이 어디 있냐며 혀를 내둘렀다.

 

  딱 이 부분까지 읽었을 때, ‘나’의 집은 효진이네 집과 어떻게 다른가? 반대인가? ‘나’의 엄마가 효진의 엄마를 보고 저렇게 생각할 정도면 좀 다른 집인가, 싶었으나 이어질 내용을 읽고 결코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곧 이어 ‘나’의 대한 상황 설명이 쭉 나왔는데, ‘나’의 아빠는 맏아들이며,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는 친척들로 하여금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나’의 엄마가 효진의 엄마의 말을 듣고 그렇게 분노하게 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엄마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딸 아들 운운하며 효진이를 깎아내리던 그 말은 사실상 아들이 없는 엄마의 처지를, 아무리 잘 키워봤자 그저 여자애라는 말이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시간이 흐르고 기준에게 여전히 무시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있는, 그리고 아무도 효진을 막아주지 않는 상황이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진은 밖에서는 본인의 집이 엄청 화목하고 서로가 사랑해주는 집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한 효진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교차되며 서술된다. ‘나’의 엄마는 친척들에 의해 아들을 낳지 못한 죄인처럼 묘사된다. ‘효진’의 엄마를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내심 ‘나’의 엄마도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모습도 비춰진다. ‘나’의 엄마가 속한 세계는 아직 그러한 세계였으므로.

 

 그리고 계속해서 효진의 세계가 서술되고 기준에게 폭력을 당하는 효진의 모습, 그걸 보는 ‘나’는 효진의 부모에게 어떻게 해보라며 말했지만, 여전히 효진에게 냉담한 부모의 모습에서 환멸을 느낀다. ‘나’는 기준을 향해 책장에 전시된 로봇장난감을 던졌고, 그제야 그 상황이 끝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동안 효진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그 부모의 반응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세계 속에 속해버린 ‘나’의 엄마는 되려 ‘나’에게 뭐 하러 남의 집 일에 나서냐며, 네가 나선다고 무엇이 달라지냐며,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 말한다.

 

  그 후,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효진의 가족은 원래 살던 칠곡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효진과 ‘나’는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601, 602는 결국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엄마가 아들을 낳았어. 나에게도 남동생이 생겼다.”고 ‘나’는 효진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그렇게 썼다.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거야. 우리는…….”

 

이렇게 소설은 끝을 맺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결코 효진과 ‘나’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과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거라는 말에서, 두 소녀의 슬픔이 느껴졌다. 행복해질 거라는 말에서, 어째서 슬픔이 느껴진 건지. 오히려 더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

 

 

 

 

  이 소설의 전반적인 소재는 남아선호사상이다.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둘의 상황을 교차되게 표현하면서도,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결국엔 별다르지 않다는, 90년대 초반, 어디에도 만연하게 남아있던 그때의 그 상황을 나타낸다. 교차하며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고, 그 두 상황이 맞물려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도 흥미 있었다. 처음엔 제목이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보니, 전혀 무책임한 제목이 아니었다. 많은 걸 내포하고 있는, 문학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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